▲ 2015년 올해의 사자성어 ‘昏庸無道’는 이승환 고려대 교수(철학)가 추천한 것으로,
당나라 때 문필가 손과정의 『書譜』에서 이 교수가 직접 집자했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2015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昏庸無道’다.
혼용무도는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이다.
혼용은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과 용군이 합쳐져 이뤄진 말로,
각박해진 사회분위기의 책임을 군주, 다시 말해 지도자에게 묻는 말이다.
혼용은 고사에서 흔히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을 지칭하는 昏君과 庸君을 함께 일컫고,
무도는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음을 묘사한 『論語』 「天下無道」에서 유래했다.
이를 추천한 이승환 고려대 교수(철학)는 “한자문화권에서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는 성어”라고 설명했다.
이승환 고려대 교수는 “연초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온 나라의 민심이 흉흉했으나
정부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무능함을 보여줬다.
중반에는 여당 원내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사퇴압력으로 삼권분립과 의회주의 원칙이 크게 훼손됐고,
후반기에 들어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국력의 낭비가 초래됐다”며 정치지도자의 무능력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선정된 혼용무도 외에도 후보에 올랐던 사자성어 △似是而非(14.3%) △竭澤而漁(13.6%) △危如累卵(6.5%) △刻舟求劍(6.4%)은
모두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2015년 한국사회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성어들이다.
사시이비는 겉은 옳은 것 같으나 속은 다르다는 뜻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하나 사실은 틀린 경우 쓰는 말이다.
설문조사에서 이를 선택한 ㄱ교수는 “사회 각 분야에서 올바르게 큰 방향을 잡은 듯 했지만
자기이익을 대변하는 소인배의 결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갈택이어는 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물고기를 잡는다는 뜻이다. 목전의 이익만을 추구해
미래의 생산적 기회를 상실하는 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이와 관련 ㄴ 교수는 “정치인들이 목적을 잊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함이 지나쳐서 나라의 국력을 고갈시키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위여누란은 달걀을 쌓은 것 같이 위태로운 형태라는 말로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뜻이다.
각주구검은 판단력이 둔하여 융통성이 없고 세상일에 어둡고 어리석다는 의미로 쓰인다.
혼용무도의 뒤를 이어 127명(14.3%)이 선택한 사시이비는 겉보기에는 맞는 것 같지만 실지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공정·객관 등으로 묘사되는 정부의 각종 정책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을 신랄하게 비판한 말이다.
사시이비를 추천한 석길암 금강대 교수(불교학)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롯한 최근 정부정책을 보면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거나,
공정하고 객관적이라고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근거를 왜곡하거나 없는 사실조차 날조해 정당성을 홍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러나 이 같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위태롭고 혼란스런 2015년 한국사회, 지혜로운 리더십의 不在에 가슴 아파했다
교수 121명(13.6%)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은 갈택이어는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고기를 잡는다는 말로,
목전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는 세태를 꼬집는 의미다.
이를 추천한 남기탁 강원대 교수(국어학)는 “사회 현상에 대한 대립은 불가피하지만
최근 대립을 넘어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없애버리려는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당장은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더라도 장기적인 발전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을 빗댔다”고 풀이했다.
후보로 선정된 사자성어 외에도 마른 나무에서 물을 짜내려 한다는 뜻으로
사회적 약자의 일방적인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분위기를 꼬집은 ‘건목수생(乾木水生)’과 목이 마르고서야 우물을 판다는 뜻으로,
일을 당하고 나서야 황급히 서두른다는 풀이의 임갈굴정(臨渴掘井)도 후보로 추천됐다.
또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해 자유로운 역사연구를 제한한다며 이를 ‘분서갱유(焚書坑儒)’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대우탄금(對牛彈琴, 소에게 거문고를 탄다) △은감불원(殷鑑不遠, 멸망한 은나라의 전철을 밟고 있다)
△인누수구(因陋守舊, 고루하고 불합리한 옛 제도와 정책을 인습해 고수한다) 등
비판적인 사자성어들이 2015년의 어지러운 단상을 압축적으로 설명했다.
이 같은 교수들의 비판적인 시각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비롯해 한 해 동안 이어졌던 다양한 사건사고에
정부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십상시 파동과 성완종 리스트, 해외 자원비리, 사자방 등 거듭된 의혹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다.
경제적으로는 TPP등 국제적인 경제외교 흐름에 동참하지 못한 채 ‘뒷북외교’를 펼쳤고, 노동법 개정이나 열정페이 논란 등에
적절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자사고 폐지나 육아대란 등을 야기했다는 평가다.
특히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설문에 응답한 한 교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민주주의의 후퇴이며 모든 다양성의 후퇴다. 대통령은 국가를 사유화하고 여당은 이에 굴종하고 있다.
모든 국가조직과 사조직이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며 개탄했다.
이재 기자 jae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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